
리사르의 첫 스페셜티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자들은 왕십리에 있었던 작디 작은 리사르 커피를 기억하는가? 아쉽게도 필자 또한 왕십리의 리사르는 경험해보지 못하여 기억 속에 없지만 단골들 사이로 구전되어온 과거를 그려볼 뿐이다. 약수로 거처를 옮긴 후 리사르의 스페셜티는 잠시 멈추었지만 2025년 5월 리사르의 스페셜티를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리사르커피는 이제 이탈리안 에스프레소를 판매하는 커피 브랜드로 대중들에게 가까워졌지만 과거를 추억하는 고객을 위해, 빠르게 퍼지는 싱글 커피의 유행을 따라, 리사르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자신감 있는 도전으로 을지로점을 시작한지 2달이라는 시간이 되어간다. 리사르만의 에스프레소 추출 방법으로 싱글 커피의 또 다른 모습을 선보이고 그로인해 점점 플랫화이트가 맛있다는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또한 다양한 블랙커피의 라인업으로 같은 커피에게서 오는 지루함 대신 새로운 맛과 다양함으로 선택의 폭을 넓혀 고객들의 하루를 스페셜티한 하루로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이번 글의 주제는 상시로 바뀌게 될 리사르 을지로점의 싱글 빈들의 라인업에 대해 상세하게 풀어보고자 한다.



에스프레소 –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아리차 에이미 G1 – 워시드 마이크로랏
리사르 을지로점의 오픈 준비 중 가장 메인이 되는 이벤트는 에스프레소용 원두로 무엇을 사용해야 하는지였다. 에스프레소로 승부를 보는 리사르에서 과연 어떤 원두로 감동을 줄 수 있는 맛을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엄청난 고민 도중 블레스빈의 에이미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필자는 내추럴보다 워시드 커피를 조금 더 좋아하는 취향까지 더해져 지금의 리사르 을지로점 에스프레소 원두가 선정이 되었다.
에티오피아 워시드가 가지는 핵과류의 단 맛과 향, 오렌지 정도의 산도의 상큼한 커피와 더불어 에이미 커피의 가장 큰 장점인 클린함까지 더해져 에스프레소로 마셨을 때 강한 자극 없는 상큼하고 깔끔한 오렌지 쥬스를 마시는 기분이 든다. 이러한 특장점이 우유와 섞여져 플랫화이트와 라떼로 소비했을 때는 복숭아 잼이 살짝 가미된 치즈케이크같은 느낌이 들어 을지로점의 대표 메뉴가 되기에는 시간 문제였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아리차 에이미 PG1 – 워시드 허니
에이미 프로젝트에 매료되어 구매한 또 다른 라인업이다. 스페셜티 시장에서 허니 프로세스의 커피를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과거보다 줄어든 것에 대한 아쉬움이 필자에게는 늘 남아있었다. 때문에 허니 프로세스라는 것에 매력을 느꼈고 샘플링 후 커피를 마셔보았을 때 허니의 강점이 모두 표현이 되는 이 커피를 소개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깔끔한 건 위의 커피와 동일하다. 깔끔함 속에 다채로운 맛들이 존재하는데 초반부에 나오는 파란색과 보라색 사이의 베리의 느낌. 개인적으로는 블루베리에 가깝게 느껴진다. 약간 어두운 베리를 지나 바닐라의 향긋함과 달달한 향이 한 번 스쳐지나가고 훅 치고 들어오는 흰색과 노란색 사이의 꽃의 향기가 짙게 난다. 후미에 깔끔함은 은은히 우려낸 우롱차와 같이 잔향을 슬쩍 남기다 사라지는 마무리까지 기승전결의 느낌이 좋은 커피이다.
엘살바도르 말라카라 C – 내추럴
필자는 내추럴 커피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과발효된 생두에서 나는 향은 로스팅으로도 지울 수 없는 독특한 캐릭터인지라 그런 내추럴을 받게 된다면 정말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내추럴을 골라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개인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고를 수 있는 나라, 엘살바도르를 선택한다.
내추럴 커피를 잘하는 엘살바도르. 특히나 말라카라 농장의 C구역에서 나온 이번 커피는 중배전 이하에서의 매력을 느끼지 못해 중강배전으로 배전도를 올렸다. 확실히 로스팅 포인트를 높일 때 나오는 캬라멜과 아몬드같은 너티함도 아주 매력적이지만 초반에 은은하게 나오는 포도의 향이 참 좋다. 자칫 심심할 수 있는 중강배전 커피에서 초반부터 치고 나오는 묵직한 포도와 같은 보라색 과실의 향이 커피를 조금 더 달콤하게 만들어주는 효과를 준다.



케냐 키아무구모 AA – 워시드
가끔 커피 추천을 해달라는 질문을 받을 때 독특한 산미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케냐의 커피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난이도 높은 산미 때문에 케냐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산미있는 커피를 먹다보면 질릴 때 즈음에 킥같은 커피로 케냐만큼 좋은 커피가 있나 싶다. 케냐에서는 말린 토마토와 건포도 이렇게 두 가지의 특징이 가장 강력하게 나타나는데 이번 커피는 후자에 가깝다.
건포도와 스윗한 적포도주의 느낌이 처음부터 나온다. 애프터가 아주 길고 향긋하여 필자는 얼그레이 티를 마셨을 때의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케냐 커피를 마실 때의 흑설탕과 같은 무거운 달달함은 다른 커피에서는 절대로 접하지 못하는 케냐만의 독특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중후하면서도 긴 여운은 마치 어릴 때 보았던 크디 큰 아버지를 보았을 때 느끼는 커다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필자는 케냐 커피를 가장 좋아하기에 앞으로도 다양한 케냐의 커피를 소개할 예정이다.
페루 플루마 도라다 게이샤 – 워시드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커피를 논할 때 하와이 코나,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예맨 모카, 루왁커피를 얘기하던 때는 벌써 10년 전이다. 전 세계 커피 시장에서 가장 가치있는 커피 중 하나이자 특유의 화려한 향과 맛으로 많은 커피인들을 매료시킨 커피는 단연코 게이샤가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향과 맛, 부드러운 마우스필과 무겁지 않게 은은히 긴 여운으로 최근들어 많이 찾게 되었지만 그만큼 가치있는 커피인지라 한 잔에 만원이 넘어가는 게이샤는 부지기수이며 1kg의 생두에 백만원을 호가하는 생두들도 생각보다 많이 있다. 때문에 선뜻 한 잔을 구매하여 마시기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그런 게이샤를 가성비있게 즐길 수 있는 몇 나라가 있는데 그 중 필자는 페루를 많이 추천하는 편이다.
을지로점에서 소개하는 페루 게이샤는 최상위 게이샤가 가지고 있는 상큼한 산미와 새하얀 꽃의 향보다 한 단계 아래에 있지만 분명한건 게이샤라는 것이다. 오렌지와 레몬과 같은 달달 상큼한 산미에 노란색 꽃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단향과 더불어 군고구마와 같은 느낌이 좋은 게이샤는 아주 가성비 있는 게이샤로 게이샤의 첫 입문을 이 원두로 해도 될 정도로 품질과 가격 모두 합격점이다.
리사르 을지로점에서 필자가 추구하는 바는 좋은 커피를 좋은 가격으로 좋은 경험을 시켜드리는 것이다. 물론 많은 생두를 볶아보고 찾는 작업을 해야겠지만 리사르의 유일한 가게로서의 명목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부분이다. 좋은 커피 뿐만 아니라 이전에 다른 카페들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세미나를 리사르의 방식으로 풀어나갈 것이다. 현재 매주 금, 토에 진행하는 ‘에이미 집으로의 초대’라는 세미나는 이번달은 이미 예약이 꽉 차있고 8월달에 시작할 ‘커피가 머무는 집’과 커핑 클래스, 로스팅 클래스까지 다양한 활동도 해나갈 것이다. 을지로점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