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3일, 드디어 인텔리젠시아커피가 한국에 오픈했다.
1995년 시카고에 오픈한 인텔리젠시아는 좋은 생두를 직접거래(DirectTrade)하며 농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생두가 가진 고유한 맛을 살리기 위해 라이트 로스팅과 새로운 방식의 추출법들을 시도하여 새로운 흐름을 만든, 스페셜티커피의 선구자이자 많은 스페셜티 카페들의 롤모델이다. 과거에 찬스브로스나 판교 이스팀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인텔리젠시아의 원두를 이제는 서촌에서 만날 수 있다. 서촌 포 인텔리젠시아는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 처음으로 오픈하는 직영점이라는 사실 만으로도 한국 스페셜티커피의 위상을느낄 수 있었다.
28일 방문했을때,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매장앞에 긴 웨이팅이 있었다. 매장 외관을 보는 순간 왜 서촌이라는 지역을 선택했는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한옥을 개조하여 만들어진 건물은 한국의 전통적인 미와 세련됨이 공존하며 서촌이라는 지역과 잘 융화되어 있었다. 이전에 한정식집이 있던 한옥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벽을 뚫고 창을 만들어 개방감을 높였으며 벽돌과 처마물받이마저 브랜드의 색과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매장 외부에서 대기 후 입장하면 매장 내부에서 주문을 하기 위한 줄을 다시 서게 된다. 웨이팅을 잘 관리하는 직원분이 계신 덕분에 매장 내부는 사람이 붐비지 않아 쾌적하게 이용 가능했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좋았던 것은 천장이었다. 한옥의 지붕에 유리천장을 만듦으로서 자연광이 매장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고 바로 아래에서 커피를 만드는 직원들은 마치 무대위에서 조명을 받고있는 주인공 같았다. 여름에는 일조량이 많아 더울 것 같긴하지만 바리스타분들이 햇빛을 받으면서 일할 수 있고 높은 하늘을 보며 일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좋아보였다. 이 바리스타의 근무공간이 바로 한옥의 마당이 위치한 자리이기 때문에 바닥에 높이차가 생긴걸 볼 수 있었는데, 오히려 이 부분 때문에 커피를 먹는공간과 주문을 하는 공간, MD상품진열대를 보는 공간이 분리되어 보여서 좋았다. 분리된 공간 덕분에 MD상품과 원두를 마음 편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원두는 약320g단위로만 판매하는 것 같았다.
바리스타의 손목을 위한 라마르조꼬 KB90과 자동탬퍼를 사용하고 있었고, 브루잉은 푸어오버의 상징같은 하리오V60 드리퍼, 펠로우EKG, 말코닉EK43그라인더 조합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서촌에서만 판매하는 시그니처 메뉴인 알터네이트 에스프레소 추출을 위해 사용하는 플레어58이었다. 채널링을 줄이고 균일한 추출을 위해 바늘이 9개정도 달린 WDT툴과 퍽스크린을 사용하고 있었다. 수동 머신인 플레어를 써서 긴 시간동안 굵은 분쇄도의 커피를 낮은 압력으로 내리기 위해 사용하는 것 같았고 과거에 6바로 커피를 추출하던 ‘터보 샷’이 연상되었다.
네모난 바 안의 5~6명의 바리스타분들은 각자의 포지션에서 급하지 않게 한잔한잔 정성을 더해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덕분에 매장이 넓음에도 회전률이 빠르진 않았지만(외부에서 30분 이상 대기 이후 내부에서 커피를 받기까지도 20분 이상 소요되었다) 모든 손님과 모든 커피에 집중하여 맛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모습이 긍정적인 느낌을 주었다. 주문받는 직원분께 메뉴에 대해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굉장히 많은 종류의 원두를 다루고 있음에도 주문이 어렵지 않게 해주었다.
주문한 커피는 알터네이트 에스프레소(5800), 아메리카노(5500), 브루잉(7000, 시즈널 블랜드 ‘Borealis Blend’선택)
알터네이트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 둘 다 블랙켓 클래식 원두를 선택했는데, 둘 다 쓴맛이 없고 초콜렛향과 단맛이 풍부하게 느껴졌다. 알터네이트 에스프레소가 더 진득하고 고농도였지만, 저압으로 추출해서 그런지 산미가 더 강하고 단 향이 풍부했다. 첫맛은 자두같고 먹고 난 후에는 다크초콜렛이 입안에 남아있는 느낌이다. 브루잉은 농도가 묽었지만 역시 과일향과 단 향이 풍부하게 나고 먹기 편해서 꽃차를 마시는 느낌이었다. 같이 시킨 초코휘낭시에와 잘어울렸고 식어도 맛있었다. 모든 메뉴가 전체적으로 단맛이 좋으면서 과함이 없어 깔끔하다. 언제나 편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커피들이다.
생두를 만드는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커피를 만드는 사람들이 주는 서비스와 그 커피의 맛은 높은 만족감을 주었다. 앞으로 매장이 더 늘어나더라도 그 매장이 서촌점 처럼 지역과 잘 융화되면서도 인텔리젠시아의 정체성을 잘 지닌 매장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제쯤이 될지 모르겠지만 웨이팅이 좀 짧아져서 자주 들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텔리젠시아 커피 서촌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 34
영업시간: 매일 오전 10시~오후 6시